상암동 집
상암동은 예전, 아마도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가양동에서 한강을 건널 때면 창문을 닫아야 할 만큼 지독한 냄새가 나던 난지 쓰레기 매립장이 있던 곳이다. 시간이 흐르며 매립이 끝나고, 기중기가 드나들고, 나무들이 심어졌다.
그렇게 스스로 생명을 회복한 땅은 지금은 넓은 공원이 되었고,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하여 경기장 앞 공원은 월드컵공원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내가 상암동 집으로 이사 온 지도 어느덧 한 17년쯤 되었다.
소위 말하는 쓰리베드 동향집이다. 크지 않은 집이지만 구조가 좋아서 방마다 넓은 창과 베란다가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거실 창 가득 숲이 보인다. 아파트가 야산과 맞닿아 지어졌고 우리 집은 11층이라 키 큰 나무들의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바로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곳에서 봄 여름 가을을 지나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저녁 해질무렵 붉게 물드는 하늘과 눈 오는 날의 설경을 만나는 것은 내 생에 주어진 빛나는 선물이었다.
1년전쯤 짙은 남색계열 블라인드를 달았다. 높이를 조절할 수도 있고, 빛이 수평으로 들게도 할 수도 있다. 남빛 블라인드 사이로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빼놓지 않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봄날의 아카시아 필 때 그윽한 향이다. 창을 열고 숨을 쉬면 대단한 아카시아 향을 맡을 수 있고 지하주차장에만 들어서도 스며든 향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두 아이는 고등학교시절과 대학시절을 보내고 각자의 삶으로 독립해 갔다.
그래서 상암동 집을 생각하면 아이들보다도 창밖의 자연이 먼저 떠오른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소파에 앉아 숲을 바라보던 저녁, 아침저녁으로 걷던 공원길, 가을이면 키높이 위로 훌쩍 자라서 은빛으로 흔들리던 하늘공원의 갈대들과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 그런 풍경들이 이 집의 기억이 되었다.
개구리 소리
7월 지금쯤은 개구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새벽 이른 시간에도 들려오는 굵고 힘 있는 울음소리는 아마 이 숲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울에 사는 개구리들의 소리일 것이다. 한동안 조용해졌다가 잊을 만하면 한참을 울어댄다.
개구리 소리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사계절 내내 들리는 것은 새소리다. 조잘조잘 지저귀는 작은 새들, 꺽꺽거리며 우는 큰 새들, 여름이면 쉼 없이 울어대는 매미소리까지. 이 집에서는 계절마다 자연이 다른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그런 소리들을 가만히 듣고 있을 때는 대개 마음이 평안한 시간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다.
지금도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글쓰기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일 때문에 쓰는 글도 있었고, 하루를 기록하는 일기도 써 보았다. 그러나 내가 '글쓰기'라고 부르고 싶은 글은 바로 지금처럼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는 글이다.
창밖의 개구리 소리와 청아한 새소리는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와 묘하게 어울린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화음 위에 내 글이 하나씩 얹히는 것 같다.
이 집은 나에게 자연을 선물했고, 쉼을 선물했고, 그리고 글쓰기를 선물했다.
상암동 집에서, 나는 조금씩 나만의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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