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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자서전

상암동 집과 개구리 소리

by Gracehaus 2026. 7. 15.

상암동 집 

 

상암동은 예전, 아마도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가양동에서 한강을 건널 때면 창문을 닫아야 할 만큼 지독한 냄새가 나던 난지 쓰레기 매립장이 있던 곳이다.   시간이 흐르며 매립이 끝나고, 기중기가 드나들고, 나무들이 심어졌다. 

 

그렇게 스스로 생명을 회복한 땅은 지금은 넓은 공원이 되었고,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하여 경기장 앞  공원은 월드컵공원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내가 상암동 집으로 이사 온 지도 어느덧 한 17년쯤 되었다.

 

소위 말하는 쓰리베드 동향집이다.  크지 않은 집이지만 구조가 좋아서 방마다 넓은 창과 베란다가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거실 창 가득 숲이 보인다.  아파트가 야산과 맞닿아 지어졌고 우리 집은 11층이라 키 큰 나무들의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바로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곳에서 봄 여름 가을을 지나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저녁 해질무렵 붉게 물드는 하늘과 눈 오는 날의 설경을 만나는 것은 내 생에 주어진 빛나는 선물이었다. 

 

1년전쯤 짙은 남색계열 블라인드를 달았다.  높이를 조절할 수도 있고, 빛이 수평으로 들게도 할 수도 있다.  남빛 블라인드 사이로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창밖을 통해 보이는 키큰 아카시아 나무들
거실의 남빛 블라인드 창 밖의 키큰 아카시아 나무들과 하늘

 

 

그리고 빼놓지 않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봄날의 아카시아 필 때 그윽한 향이다.  창을 열고 숨을 쉬면 대단한 아카시아 향을 맡을 수 있고 지하주차장에만 들어서도 스며든 향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두 아이는 고등학교시절과 대학시절을 보내고 각자의 삶으로 독립해 갔다. 

 

그래서 상암동 집을 생각하면 아이들보다도 창밖의 자연이 먼저 떠오른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소파에 앉아 숲을 바라보던 저녁,  아침저녁으로 걷던 공원길, 가을이면 키높이 위로 훌쩍 자라서 은빛으로 흔들리던 하늘공원의 갈대들과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  그런 풍경들이 이 집의 기억이 되었다.

 

 

개구리 소리 

 

7월 지금쯤은 개구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새벽 이른 시간에도 들려오는 굵고 힘 있는 울음소리는 아마 이 숲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울에 사는 개구리들의 소리일 것이다.  한동안 조용해졌다가  잊을 만하면 한참을 울어댄다. 

 

개구리 소리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사계절 내내 들리는 것은 새소리다. 조잘조잘 지저귀는 작은 새들, 꺽꺽거리며 우는 큰 새들, 여름이면 쉼 없이 울어대는 매미소리까지.  이 집에서는 계절마다 자연이 다른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그런 소리들을 가만히 듣고 있을 때는 대개 마음이 평안한 시간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다.

 

지금도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글쓰기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일 때문에 쓰는 글도 있었고, 하루를 기록하는 일기도 써 보았다.  그러나 내가 '글쓰기'라고 부르고 싶은 글은 바로 지금처럼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는 글이다. 

 

창밖의 개구리 소리와 청아한 새소리는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와 묘하게 어울린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화음 위에 내 글이 하나씩 얹히는 것 같다. 

 

이 집은 나에게 자연을 선물했고, 쉼을 선물했고, 그리고 글쓰기를 선물했다. 

 

상암동 집에서, 나는 조금씩 나만의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암동 하늘공원 박넝쿨과 하늘
상암동 하늘공원에 박넝쿨이 익어가고 있는 모습

 

가을 붉고 노란 단풍든 나무들 모습
상암동 공원의 가을날 불게 물든 단풍나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