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아마도, 그리고 지금도 일이다.
스무 살 무렵 대기업 지장생활을 시작하였을 때부터 그래도 꽤 다른 몇 가지의 일들을 해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일을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만, 그 일을 시작할 때가 있었고 그만둘 때가 있었다.
각양의 일을 할 때를 생각해 보면 모든 일에는 힘들 때도 당연히 많이 있었다.
일이 주는 것들
내가 생각하는 일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남을 위한 서비스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의 가치는 대개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만족도이다.
예전에 한동안 작은 목도장을 파는 걸 배워본 적이 있다. 복사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복사와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해 주는 사무점이 있었을 때다. 신기하게 작은 나무도장을 끼워놓고 조각칼로 깎아내면 이름 석자가 만들어진다. 칼끝으로 한 획 한 획을 깎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평범한 나무조각에서 이름이 나타난다.
잘 깎인 도장을 손에 들었을 때의 기쁨은 생각보다 컸다. 신기하게 어떤 때는 아주 마음에 들게 예쁘게 깎아질 때도 있었다.
무언가가 만들어질 때는 잠깐이라도 어느 정도 창조의 기쁨이 있다. 서비스에도 창조의 기쁨이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머리를 자르는 미용사도 자기 손끝에서 머리모양이 정말 예쁘게 나올 때는 대가와 별개로 그 자체의 기쁨이 있다. 변호사나 법률가도 종류는 다르지만 자기가 의도하는 대로 어떤 일을 이루어냈을 때는 기쁨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일을 왜 하는 가 생각을 해보면 남을 섬기기 위해서이며, 그 가운데서 무언가 만들어내는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에 대해 얻은 대가로 다른 사람에게 대가를 지불하며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살아가는 데는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한데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살지는 않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주 외에도 우리는 책을 읽기도 하고 음악을 듣고 싶은 필요도 있다.
그래서 현대인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정말 다양하다.
그중에서 문득 일을 하면서 느끼는 기쁨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일을 하면서 기쁨을 많이 느낄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이겠다. 내게도 기쁨을 많이 주었다면 나의 일의 결과물이 쓰이는 곳에도 그 효용이 크지 않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사실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한테 일이 주는 의미와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써보고 있는데 잔잔한 기쁨이 있다.
요즘은 특히 코로나 이후 어마어마한 기술의 개발로 인류는 어쩌면 일을 안 하게 되는 세상을 맞이할 거라고 하는데 정말 놀랍다. 잘 들여다보면 모든 사람이 일을 안 한다는 것은 아니고 어느 부류의 사람들이 할 일이 대체된다는 말인 것 같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의 지식노동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드는 영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일이, 어쩌면 '지금 내가 하는 일도 없어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생각해 보는 시점에 나는 나에게 있어서 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있다.
일의 댓가로 얻게 되는 돈
일을 하고 대가가 주어지고 교환과 잉여의 저축의 필요에 따라 생겨난 것이 돈이다. 일의 보상과 평가가 돈으로 매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이 잘 안 될 때도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까 생각을 하는 것인데,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로 건너뛰어서 생각을 하게 되면 마치 돈이 목표인 것 같은 착시를 겪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이 건너뛰는 순간, 돈은 결과가 아니라 목적처럼 보이는 착시가 생겨난다.
심지어 '일하러 간다' 하고 '돈 벌러 간다'라는 말은 더러 같은 말로 쓰이기도 하는 이유다.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도 돈을 버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희생
우리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사용한다. 체력을 사용하고 젊음을 사용한다. 결국 우리의 삶 자체를 조금씩 일에 내어 놓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시간과 체력, 젊음과 같은 다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희생하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어찌 보면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고 무조건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밤과 낮을 잊은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과연 그것이 가족만을 위한 것이었는지 일종의 바알신처럼 나도 모르게 일을 섬기게 되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희생을 드린다는 말은 경배를 드린다라는 말로도 쓰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어느 순간 일 자체가 목적이 되고 나도 모르게 돈을 바라보고 살아가기 시작한다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섬기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이 말하는 우상숭배가 꼭 나무나 돌 앞에 절하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일은 하는 것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 기쁨이 있지만,
하지만 필요를 넘어서는 일에는 고통과 상실이 따를 수도 있는 것을 이제 와서 깨닫게 된다.
어느 정도가 필요한 가를 아는 것이 지혜일까
그래서 요즘은 일을 더 많이 하는 것보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가다 보니 이전에는 지나치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온
어제 저녁 퇴근길에서 문득 기뻐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창밖으로 하늘이 보이고, 저마다의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온했다.
돌아보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자족할 만큼만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하늘도, 계절도, 사람들의 웃음도,
가족과 책한권도
무엇을 위해 일하는 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면, 일은 더 이상 내가 끌고 가는 짐이 아니라 누군가를 섬기는 하나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일은 돈을 버는 수단을 넘어 삶을 풍성하게 하는 축복이 된다.
어쩌면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을 풍성하게 누리기 위함이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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