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이가 어제 예방 주사를 맞았다.
요즘 새로운 사물을 보는 것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로운 것들을 또렷이 쳐다보는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엄마 아빠와 눈 맞추기를 하며 옹알대는 하성이가 간호사 언니도 친숙하게 쳐다보고 뭐라고 한다.
안타깝게 그 순간에 하성이는 넓적다리에 작은 약솜으로 소독을 하고 갑자기 주사를 맞았다.
어찌 보면 잠깐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뭐 엄마 아빠도 믿을 수는 없다 그런 걸까?
언제 까무러치게 울었나 싶다 싶게 금방 울음을 그치고 두리번거리며 새로운 것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니
아마도 그보다는 새로운 것들과 재미있음, 엄마 아빠의 사랑 그런 것들로 마음이 가득 찼나 보다.
아직 주사라는 것이 뭔지 알 수는 없을라나
하여간 주사 맞고 우는 하성이 동영상을 보고 안타깝기도 하면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아 픔
이유와 의미를 모르겠는 아픔이 하성이만 겪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되어 가면서 겪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들은 예방 주사 아니라도 많다.
예방 주사를 맞아야만 치명적인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자라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은 때로 어쩌면 필요했던 것이었을까 돌아보면 생각되는 것들도 있다.
내 경우에도 보면 대개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들로 인한 안타까운 결과들이 더러 있다. 가끔 옛날 일들을 생각해 보고 아쉬울 때마다 곱씹어서 생각하게 되면 얼마나 돌이키고 싶은 것이 많은가.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했을 텐데도 말이다.
그런데 정말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 보면 전부 나의 허물과 죄들 뿐이다.
이제야 아침에 잠을 깨어서도 말씀을 듣고 늘 말씀을 생각하게 되니 이제야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는가 보다.
진작 그렇게 살았어야 한다.
옹 이
아픔이 아물고 나면 상처의 흔적이 남는다. 때로 마음에도 남는데 나뭇가지의 마디처럼 옹이를 만들지만 좋은 효과도 있다.
더욱 단단해지게 한다. 잘 부러지지 않도록 말이다.
잘 부러지지 않도록 생긴 옹이는 가끔 다가가는 사람들에게 투박하게 느껴지고 불편하다.
그렇지만 가끔 반대 방향으로 생긴 옹이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제짝을 만난 것처럼 잘 들어맞기도 한다.
아픔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서일까? (하성이 엄마하고 아빠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건 내 생각이다)
나는 하성이가 가능하면 상처 없이 맑고 부드러운 영혼으로 자라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상처 입은 영혼들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도 바라는 마음이 있다.
욕심이 너무 많은가?
하성이는 밤에는 열도 오르지 않고 잘 잤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다음날 새벽, 하성이는 혼자 힘으로 처음 저 혼자서 뒤집기에 성공했다.
어쩌면 사람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아픔은 지나가고, 그 자리에 조금 더 자란 내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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